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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for thought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그리고 오버진의 쿠킹클래스

감히 코로나 이후를 논한다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타당한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언젠가 끝은 있겠지요. 집단 면역이 생기든, 백신이 나오든, 치료제가 나오든, 아니면 더 끔찍한 결론을 내고 마무리가 되든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에도 끝은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끝이 끝일까요? 끝이라 하면 우리가 예전에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한때 사람들이 가득 모여 즐기는 축제들이 예전같이 열릴 수 있을지, 이런저런 핑계로 마련하던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술자리들은 계속해서 생길 수 있을지, 돌잔치, 칠순잔치...이런 잔치들에 사람을 초대해도 될지, 동창회든 송년회든 크리스마스 파티든 사람을 만나게 하고 모이게 하던 각종 모임들은 변함이 없을지, 사소하게는 친한 친구들, 동네 엄마들, 동호회 사람들과의 가벼운 모임들도 이전 같은 빈도로 가질 수 있을지...많은 회의가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나 자신에게 선물처럼 주던 해외 여행을 예전처럼 갈 수 있을지,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현지의 길거리 음식은 먹을 수 있을지, 이런 생각들이 들기도 할 겁니다. 당장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친구 하나도 언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지 감을 잡지도 못하고 있어요. 예정대로라면 3월에 한 번 들어왔어야 하는데 이 바이러스 때문에 발이 묶인 데다 풀린다 해도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스스로 몸을 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해외 여행이나 출장이라는 면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직장 생활을 하던 거의 전 기간을 글로벌 부서에서 지냈고 농담처럼 서울의 명동보다 런던의 소호를 더 자주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장이 잦은 편이었죠. 후배 하나는 제 출장 일정을 보고 승무원 스케줄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가장 자주 간 영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미국, 러시아, 중국, 캐나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 호주 등등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나라들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출장을 다닌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여행까지 더하면 5대양 6대륙을 두루 다 커버한 것 같습니다. 아!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 충분히 밟아보지 못했네요. 북아프리카쪽은 간 적이 있지만 여긴 그 이하의 아프리카와 차이가 많이 나서 크게 아프리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로 아프리카는 아직 제게는 미지의 세계인 듯합니다.

 

 

그리고 미식과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제 욕구는 이런 출장과 개인적인 여행을 통해서 한 번씩 방출되곤 했어요. 짧게 가는 출장이야 먹을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곧 죽어도 한식을 찾는 동료들과 함께 출장길에 오르면 줄곧 한식만 먹다 오거나 하는 일도 있었지만 (덕분에 해외 한식당 정보는 많이 모았네요 ^^) 제 출장은 중장기가 많아서 한식만 먹고 오는 불상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미식을 즐기는 걸 아는 사람들은 식당이나 꼭 먹어야 하는 음식들을 추천해달라 하기도 하고 같이 가기도 하는 등 빡빡한 출장 일정 중에 현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는 건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했던 의식이었어요. 

 

 

저는 영국에서 요리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얘기를 하면 다들 갸우뚱하죠. 왜 하필 영국?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제가 유학을 가고자 했던 시점과 학교의 개강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는데 마침 크게 아팠던 직후라 휴직을 내기도 쉬웠죠. 영국이라는 나라가 애초에 선택지에 들었던 이유는 수차례 영국 출장을 다니면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런던 출장을 다니면서 런던이 세계 각국의 음식 문화를 즐기기에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깨달았다는 데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문화가 집결되어 있는 곳으로 치면 미국도 영국에 뒤질 리가 없었지만 당시에는 주로 유럽 출장을 다니면서 유럽에 좀 더 익숙해져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한 번씩 유럽 다른 국가들로 짧은 음식 여행을 다녀오기 좋다는 것도 또 하나의 큰 이유가 되었어요. 

 

 

그래서 꿈만 같던 프랑스 한 달 살이도 해 보고, 이태리도 한 달 살이를 해 보면서 여행자로서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에 그치지 않고 현지인 느낌을 내면서 내 손으로 그곳의 식재료를 사고 다듬고 해 먹는 요리 덕후로서의 호사를 누리기도 했죠. 저는 신혼여행 숙소도 에어비앤비로 구하면서 매일 같이 슈퍼나 파머스 마켓에서 장을 보고 집에서 해 먹는, 언뜻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행동도 했죠. 그 번거로움을 재미라 여길 수 있었던 데는 전 세계 음식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뭔가 맛 본 건 따라 해봐야 한다는 실험 정신이 바탕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리우데자네이로의 시내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언덕길에 있는 한 레스토랑의 식전 빵으로 나온 뻥지께이죠Pão de queijo를 집어 든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던 리우의 바닷바람, 밤이 되어도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 숨통을 조이는 것만 같던 더운 어느 날 대만의 한 야식당에서 먹었던 계절에 맞지 않던 우육면의 따뜻한 국물이 주던 요상한 충족감, 조류 공포증이 있어 벌벌 떨면서도 비둘기와 나란히 길거리에 앉아 풀드 포크 pulled pork 버거를 우적우적 베어 먹던 런던 버로우 마켓의 시끌벅적한 장터 풍경과 고급스러운 식재료들의 기묘한 조화, 한 해 먹을 바질 페스토를 만든다며 텃밭에 있던 바질을 따던 민박집주인 안드레아를 돕느라 7월 볼로냐의 뜨거운 햇볕을 온 등으로 다 받아내고 몇 주를 고생하게 만들었던 일광 화상의 따끔따끔함, 국제공항임에도 불구하고 신용 카드를 받지 않아 같이 출장 갔던 동료와 함께 가지고 있던 미국 달러까지 다 털어 기어코 사 먹고 말았던 모스크바 국제공항(예전)의 러시아식 만두 펠메니...잠깐이라도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추억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슬라이드 쇼처럼 지나갑니다. 당시엔 알지 못했던 제가 누렸던 굉장히 큰 행운이었지요. 

 

 

내 요리 세계의 지평을 넓혀준 그 모든 미식의 경험들을 요리 선생이 된 지금, 그리고 코로나로 우리의 발이 꽁꽁 묶인 지금, 더욱 적극적으로 공유해볼까 합니다. 해외 좀 많이 가봤다는 사람의 자랑일 뿐이지, 라는 편견을 살짝 걷고 들어주신다면 비록 지금은 발이 묶였으나 그 언젠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제 얘기를 듣고 찾아간 어느 파머스 마켓에서, 어느 소박한 레스토랑에서 저를, 그리고 저와 함께 했던 수업을 기억하며 좀 더 깊고 풍성한 경험을 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요리는 물론, 이야기가 함께 할 새로운 컨셉의 쿠킹 클래스는 어쩌면 토크쇼와 클래스가 적절히 버무려진 그런 수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연중 시리즈로 진행이 될 이 쿠킹클래스의 이름은 "식탁에서 떠나는 세계여행"으로 정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첫 여행지는 저의 젊음과 열정이 녹아 있는  "영국"이 될 겁니다. 여행 날짜, 그러니까 수업일은 6월 말 또는 7월 초순으로 예상합니다.  바뀔 수도 있지만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 뱅어스 앤 매시bangers and mash, 프루트풀fruit fool로 생각하고 있어요. 더 추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걸로 바뀔 수도 있어요.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려요. 아울러 원하시는 '국가'의 요리가 있다면 댓글이나 문자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