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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평범한 팬케이크가 질릴 때...모로칸식 팬케이크 Moroccan Baghrir

영국에 있을 때 잉글리쉬 머핀을 정말 많이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고급 베이커리 같은 데서 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세인스버리Sainsbury's에 파는 저렴한 잉글리쉬 머핀이었죠. 영국 갈 때마다 몇 봉씩 챙겨올 정도로 이상하게도 이 세인스버리의 잉글리쉬 머핀을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서너번을 잉글리쉬 머핀을 먹다가 좀 지겨워질 때쯤 크럼펫이라는 또 하나의 영국식 베이커리 아이템에 눈길을 주곤 했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이 크럼펫은 이스트가 들어가서 살짝 시큼한 맛이 나는데 주로 묵직한 무쇠 프라이팬에 구워내 바닥은 바삭하지만 윗부분은 대체로 부드럽고 살짝 쫄깃했죠. 이 크럼펫의 매력은 숭숭 난 구멍 사이로 버터가 녹아 들어가고 꿀이나 시럽이 들어가서 버터나 시럽 등이 조연 정도가 아닌 주연급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슈퍼마켓 잉글리쉬 머핀은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지만 이 크럼펫은 슈퍼에서 파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발효라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직접 만들어먹곤 했는데 이런 크럼펫과 비슷한 형태로 모로칸 바그리르(굳이 한글로 표기하자면 이 정도 발음일 듯 합니다)라는 게 있어요. 크럼펫이 작고 두껍게 굽는 형태라면 이 바그리르는 파전 정도의 얇은 두께로 굽고 주재료는 '세몰리나'입니다. 

 

세몰리나는 파스타를 만드는 듀럼밀을 제분한 가루로 거칠게 제분한 것, 곱게 제분한 것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곱게 제분한 게 많이 판매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곱게 제분을 했다고 해도 밀가루 같은 정도는 아니어서 어느 정도 입자감은 남아 있지만 굽고 나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입맛이 너무나도 민감하다면 곱고 섬세한 입자감이 살짝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크럼펫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구워서 버터, 꿀 등을 올려서 먹는데 이 때 버터는 무염이 아닌 가염을 쓰시는 게 좋아요. 베이킹을 할 때 무염을 많이 쓰다 보니 대부분 가정에 있는 것들이 무염일텐데 가염이 되지 않은 버터는 버터 본연의 맛을 잘 살려주지 못하죠. 가염을 구하기 힘들 경우 살짝 녹여서 소금과 섞고 다시 냉장고에서 굳혀서 사용하면 되지만 이도 저도 귀찮으면 구울 때 버터를 써서 버터향을 살짝 입히고 먹을 때는 꿀이나 시럽만 곁들여도 되죠. 베이킹 파우더가 들어가는 팬케이크가 조금 질린다 싶을 때, 은은한 이스트의 발효향을 좋아하신다면 가끔씩 생각날만한 그런 팬케이크입니다. 

 

<재료> 

세몰리나 170g

강력분 35g 

이스트 1작은술보다 약간 적게 (여름엔 1/2 작은술) 

소금 1/2 작은술 

바닐라 설탕 (또는 그냥 설탕) 1작은술 

미지근한 물 (40~ 45도 정도) 380g

 

<만드는 법> 

1. 모든 재료를 푸드 프로세서나 블렌더에 넣고 1 ~2분 가량 돌려 혼합하고 믹싱볼에 담아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동안 따뜻한 곳에서 발효를 시킨다. (발효시간은 온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보다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2. 프라이팬을 센불에서 달궜다가 중불로 낮추고 기름이나 버터를 두른 후 키친타올로 닦아내고 한 국자를 팬에 올린다. 이때 반죽이 잘 퍼지는 편이므로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3. 좋은 품질의 시럽이나 꿀과 함께 곁들여낸다. 

 

* 뒤집지 않아요. 윗면이 다 익으면 스패츌러로 살짝 들추어서 바닥색을 확인하고 노릇한 갈색이 될 때까지 구워 주세요.

 

한 장씩 굽고난 후 불을 가장 약불로 낮추고 맨 먼저 구운 것부터 순서대로 이렇게 쌓아서 1~2분 가량 두면 팬케이크가 전체적으로 따뜻해집니다. 
홈메이드 대추야자(dates)시럽을 뿌렸어요. 꿀이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좋아하는 시럽을 자유롭게 뿌릴 수 있습니다. 

구멍 사이로 꿀이나 시럽이 들어가면 팬케이크가 전체적으로 촉촉해져요. 구멍 속으로 바로 스며들다 보니 꿀이나 시럽을 과하게 뿌리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과하게 뿌리면 팬케이크가 질척거리는 맛이 날 수도 있고 너무 달아서 먹기 힘들게 될 수도 있거든요. 

 

이 홈메이드 대추야자 시럽은 곧 소개할게요. 메이플 시럽 못지 않은, 어쩌면 그보다 맛있는 천연 시럽으로 활용도도 아주 높습니다.